역사책에도 나오는 인물의 18대 종손의 배우자가 최근 전화로 여러번 유언장을 쓰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분과의 인연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남편이 2009년 경 신문에 나온 내 인터뷰기사를 스크랩 해놓았다면서 증여세 문제가 생겨 부부가 함께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오셔서 상담을 받으셨다.
세무조사가 나오면 찾아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얼마지나 세무서에서 세무조사가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다시 찾아오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견서를 하나 적어드렸다.
증여세 과세가 안 되는 법리를 간결하게 적었다.
딱 2페이지 의견서였다.
말미에 서명하고 날인하면서 “아마 이 의견서를 제출하면 과세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확신이 들어 그렇게 말씀드렸다.
결국 과세는 되지 않았고 그뒤로 종손께서는 고맙다고 사례를 하고자 하였다.
부부는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음악감상을 위해 거실 천정을 일부러 높게 지었을 정도로 애호가였다.
한번은 일부러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예술의 전당에서 책 한 권과 함께 그 책에 나와있는 곡들 전부를 몇십개의 CD 음반으로 사오셨다.
클래식을 꼭 들으라는 당부를 하셨다. 종손이다 보니 보학(譜學)에도 정통하셔서 귀동냥으로 귀한 지식들을 전해듣기도 하였고,
역사속의 인물인 조상이 묻힌 명당도 둘러보곤 하였다.
그 뒤로 몇 번 더 왕래하다가 전화로 안부만 묻게 되었다.
세상 적응하느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항상 나를 걱정해주셨다. 세상이 험하다고.
어느 날은 전화로 목소리 듣고 싶다면서 전화가 왔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결국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되는 시간안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독하다면서 “변호사님을 자꾸 찾아요.”라고 하였다.
그 날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급히 찾아갔다.
사모님은 반가워하면서 그분에게 “당신 좋아하는 고변호사 왔어요.”라고 말하자
벽쪽으로 누워있다가 몸을 돌려 나를 보더니 “내가 좋아하는 고변호사”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악력이 전혀 위독한 분 같지 않았다. 더구나 얼굴 혈색이 전혀 환자같지 않았다.
금방 나을 기분이 들었다.
“얼른 일어나셔야죠. 금방 회복하시겠네요.”
크게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대화를 길게 하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그런데 딱 이틀 후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종손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너무 이상했다. 분명히 내 손을 잡은 온기와 악력이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문상을 가서 사모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소 혼수상태에 있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딱 두 사람만 알아봤다고 한다.
당신이 좋아했던 사람만 알아봤다는 것이다.
내가 병문안 왔을 그 때만 그날 정신이 온전하였고 내가 가고 난 다음부터는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금사건을 하면서 돈을 개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일을 해준 몇 안 되는 의뢰인이었고,
고맙다는 마음을 항시 표현하시려고 했던 보기 드문 분이었다.
올해도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미세먼지에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환절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사망률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미리 미리 정리할 것이 있으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재산이 있으면 될수 있으면 쓰는 게 좋고
쓰다가 남으면 증여를 하든지 아니면 유언을 하든지 해서
사후에 자식들이 싸우지 않게끔 해야 한다.
어차피 호로자식들은 싸울 수밖에 없지만 유언장을 써서 확실히 재산분배를 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유언에는 5가지가 있는데 주로 사용하는 게 자필유언과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자필유언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게 장점이지만 사후에 검인절차와 다른 상속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유언효력확인의 소를 제기해서
상속등기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반하여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증인 2명을 대동하고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술해야
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필요하고 최대 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재산이 크지 않고 상속인들간에 다툼이 없을 것 같으면 자필유언이 편하긴 하다.
단 날인을 꼭 해야 하고 주소를 꼭 적어야 한다. 유언은 엄격한 형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정 요건을 다 갖춰야 하는데 문제되는 게 날인이 없는 경우와 주소를 적지 않은 경우이다.
실제 연세대학교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하였는데 날인이 빠져있어
유언의 효력이 부인된 경우가 있었다. 국세청 재직시 실제 이의신청 사건을 직접 하였던 사건이었다.
평생 혼자 살다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유언장을 작성해서 은행 금고에 보관했던 것이다.
은행에서 여동생과 조카들을 불러 금고를 열어보다가 발견했는데 유언장 내용대로 집행하고자 처음에는 맘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날인이 없는 유언장은 무효라는 사실을 알고 연세대에 기부하지 않으려고 하자 연세대학교는
상속인들을 상대로 유언을 그대로 집행하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은행은 나도 모르겠다면서 예금을 공탁하였고 국세청은 국세청대로 일단 상속인들에게 수십억의 상속세를 과세하고
체납하자 고액체납자라는 이유로 출국금지처분을 하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상속인 중 한사람이 교수였는데
그가 이의신청 회의에 들어와서 의견진술을 하면서 소송에서 이기면 상속세를 낼 테니 일단 출국금지라도 풀어달라고
읍소하였다. 딱한 사정은 위원들끼리도 공감을 했지만 예금이라는 게 현금이다 보니 예금을 출금해버리면 징수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논리에 밀려 이의신청은 기각하였다.
결국 소송에서 상속인들이 연세대학교를 이겼고 상속세는 납부하고 끝이 났다 싶었는데 연세대학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끈질기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 사람은 선의지만 받은 사람은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는데 그 결정문의 어느 문구를 보면서 참 명언이다는 생각을 가졌던 구절이 있었다.
내가 이해한대로 요약하면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데 서명 외에 날인까지 요구하는 것은 마지막 확정적 의사표시를 요구하기때문이라는 취지에서
민법 규정은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확실히 줘야겠다고 마지막 맘을 먹을 때 날인을 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이 쉬운 게 아니다. 그것도 애써 모은 돈을 남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고통이 따른다.
유언장을 쓰자고 전화한 사모님도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신상에 벌어질 지 모르기때문에 준비하고 싶다고 한다.
유언장도 이런 식의 재산을 나눠주는 내용의 유언장도 있지만
부모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의식을 형성하여 왔는지 인생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주는 것도 유언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볼때는 그게 더 고귀한 유언이 아닐까 싶다.
오늘이라도 내 삶의 흔적을 남겨보는 게 유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