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의 5년] 12 KBS 정연주 사장 업무상배임죄로 검찰 참고인 조사와 법원 증인으로 다녀오다
2008년 7월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업무상배임죄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 담당 수사계장이 전화로 출석을 요구하였다. 떡 주는 데도 아닌데 그런 곳에서 오란다 하여 어느 누가 선뜻 가고 싶겠는가? 그래서 서면조사를 요구하려고 하다가 어차피 한번 겪을 일이라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있으면서 KBS 세금사건 조정을 하였기 때문에 담당자로서 참고인 조사에 응한 것이었다. 무슨 죄 지은 것도 없으니 떳떳하게 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만의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두 명의 수사관 중에서 인상 좋은 나이든 수사관이 아니라 까칠해 보이는 젊은 수사관이 조서를 받았다. 속으로 ‘피곤하겠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상대방이 거칠게 나오면 기분이 나쁠 뿐이다. 참고인 조사이므로 그야말로 참고인의 진술을 듣고자 해야함에도 이미 수사방향은 틀이 짜져 있었다. 이미 실무자와 국장까지도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최종적으로 나에게서도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KBS가 소송에서 이기는 사건을 괜히 조정을 해서 손해볼 짓을 했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나를 부른 게 패착이었다. 자신들이 듣고싶어 하는 말을 하도록 유도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핑퐁이라는 말을 조서에 기재하게 하였고, 이는 정연주의 유무죄를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암호를 걸어놨으니 이를 풀면 무죄가 되는 거였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첫마디가 이 말의 의미를 물어볼 때 ‘아! 이 사건은 무죄가 되겠구나!’라고 직감하였다. 언쟁 끝에 암호를 걸어놨는데 재판장이 이를 알아차린 것이다. 암호를 인식할 정도라면 그 재판장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하고자 고민했다고 봐야 한다.
검찰조사를 받는 도중 자신들에게 마음에 안 드는 대목에서는 수사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나이도 5살 어렸다. 조사를 다 마치고 나갈 때 그때서야 비로소 계면쩍게 말해서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예우를 갖춰준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사건과 관계없는 사적인 질문까지 해대는 계장을 보면서는 ‘우째 이럴까’였다. 마음이 상했지만 대응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해봐야 들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번은 큰소리를 내면서 “참고인에게 그렇게 윽박지르면서 조서를 받으면 되느냐.”라고 어필하기도 하였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사람을 보면 한 번씩은 그럴 필요가 있다. 8시간의 조사를 받았지만 실상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을 이리저리 삥삥 돌리면서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고자 실속 없는 질문들을 하느라 시간을 보낸 느낌이었다. 나 역시 사정기관에서 업무를 해보기도 했지만 결론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하는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다. 큰소리로 상대방을 윽박질러봤자 자기 이해부족이고 자기가 원하는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능력부족의 표현일 뿐이다.
‘누가 나를 소라하면 ‘음매’해주고, 말이라고 하면 ‘히이힝’ 해줘라’라는 성현의 말씀대로 웬만하면 사람들과 각을 세우지 않고 싶을 뿐이었다. 조사관은 혼자서는 안되겠는지 어느 순간부터 두 명의 사람들이 방에 더 들어와서 내 답변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국세청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자 답변을 회피하고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갔다.
그 수사계장에게도 여러 번 말했다.
“인연이 있어 만났으니 인연대로 또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존재가 달라질 것이다’라는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그 수사관도 고생이었다. 한번은 검사가 자리를 비자 머리를 두손으로 쥐어 짜는 시늉을 하면서 ‘아! 세금은 어려워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나보고 “만일 변호사님이 KBS 사장이라면 조정을 했겠습니까?”라고 의견을 물어봤을 때 해준 말이 있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 존재에 있어보지 않았는데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수사계장의 눈이 똥그래진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혀 겪어보지 못한 증거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액운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언젠가는 그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잘 되고자 하는 욕심에 함부로 안 되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는 거였다.
조사가 다 끝나고 검사에게 한 말이 있었다.
“나는 한 번으로 지나가버리지만 검사님은 업으로 이 일을 해야 하니 힘드시겠습니다.”
“맨날 하는 것인데요.”
답답한 마음 그지없었다. 레미제라불의 쟈베르 형사를 보는 심정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오니 12시가 조금 못되는 시간이었다. 마치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보슬비가 처량하게 내렸다. 그 때 그 순간 마음 속에 떠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남을 위해준다는 마음만 먹어도 하느님이 예뻐해주겠구나.”
사람이 그런 마음만이라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진짜 귀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2009년 3월 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법정이었다. 10분 전에 도착하여 법정 경위에게 증인출석을 체크 받고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듯한 한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
누군지 의아해 하였다.
“세금 조정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입니다.”
그제야 알아보고,
“아! 그래요. 문서에서 많이 봤습니다.”면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있으니 아는 사람들이 한명씩 나타났다. 당시 같이 일했던 국세청 사람들이다.
“증인들 들어오세요.”
법정 경위가 소리쳤다. 다 같이 법정으로 들어가 증인선서를 하였다.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면 처벌을 감수하겠습니다.”
검사가 증인 순서를 정했다. 나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증인이 증언을 하는 동안 나머지 증인들은 법정 밖에서 대기하였다. 밖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가 모셨던 국장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국가가 말이야 선량한 시민을 증인으로 나오라고 하면서 안 나오면 과태료나 구인을 한다고 무서운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증인소환장에 써진 문구를 이야기 하는 거였다. 증인소환장에는
-만일 귀하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불출석 사유를 신고하지 아니한 때에는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것으로 인정하여 법원은 귀하의 불출석으로 인하여 생긴 비용의 일부 배상을 명할 수 있고,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거나 구인할 수 있으며… -라고 씌여져 있었다.
“기분 나쁘시죠.”
“아니 선량한 시민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 문구를 써야지 마치 협박하듯이 하면 되겠어.”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나 역시 증인으로 소환되는 것에 짜증이 났다. 일해주고 뺨맞는 꼴이긴 하지만 어쩔 것인가. 사법권에 복종하는 수밖에.
“그런데 왜 검찰은 전 KBS 사장을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해가지고 적법하게 일한 우리들이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내 차례가 되어 증인석에 앉았다. 재판장은 첫마디로 ‘핑퐁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서로 조정을 하지 않으면 KBS 와 국세청간에 세금소송이 무한대로 계속 반복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과세 비과세 영역을 당사자들이 알아서 정하라는 게 법원 판결인데 이를 두고 국세청이 이 정도라고 과세하면 KBS는 그 정도가 아니라고 소송을 하면 법원은 또 알아서들 하라는 판결을 선고하고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검사는 공판검사와 함께 검찰석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였다. 그는 자꾸 나에게 ‘과장이 직원이 하는 일을 모르냐’고 다그쳤는데 ‘직원이 40명인데 그들이 하나하나 한 것까지 어떻게 과장이 압니까?’라고 답해줬다. 사건의 본질은 재판장은 이미 알아채고 있어서 그런지 기소를 유지하고자 집착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말했다.
“검사님! 세금은 제가 검사님보다 더 잘 압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수사검사 옆에 앉아있던 아주 어려 보이는 검사가 도끼눈을 뜨면서 ‘증인 웃지 마세요’ 라고 큰소리 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볼때 검찰이 욕먹는 이유가 검찰 내부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검사만 되면 안하무인이 되고 승진에 목을 걸고 닥치는 대로 해도 된다는 사고와 그러면서도 정의를 수호한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주류를 차지한 듯 했다. 같이 고시공부했던 이들이 지금은 검찰총장도 되고 검사장도 되었다. 라면먹고 공부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들만큼은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이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법정에서 전율스러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KBS와 부가세 조정에서 실무 책임을 맡았던 고성춘 당시 국세청 법무2과장 법정 증언 때였습니다. 고성춘 증인은 검찰 조사 때, KBS에 대한 재부과 여부와 관련하여 그것이 ‘불가능하냐, 현실적으로 어려우냐’를 가지고 무려 4시간 동안 씨름을 하면서 시달렸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검찰은 ‘불가능’을 원했지요. 그래야 배임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을 테니까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국세청의 세금 재부과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방법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니, 배임 적용은 근원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것이지요.
국세청 법무과장 지낸 사람을 불러다 참고인 조사를 하면서 그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4시간이나 닦달을 했다고 하니, 이게 기본 틀과 방향을 죄다 미리 정해놓고 하는 표적수사, 기획수사, 정치수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역사는 반복된다. 정권이 바뀌니 언론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어느 정권이든지 자신을 비판하면 기분나쁜 것이다. 충언은 쓰다고 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사람 본능이다. 참모들이 싫은 소리 안하는 게 살아남는 비결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회장들 속성이 있다고 한다. ‘되새김질’이라고 한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 기분나쁜 체 하지 않지만 꼭 나중에 보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사구팽을 안 당하려면 기분 좋은 말만 해주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회사를 들어가보면 왠지 침울한 것 같았다. 제도권 언론을 보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다. 정권 바뀔 때마다 언론사 사장 교체하고 안 나간다고 버티고 하는 모습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내가 볼 때 이참에 아예 유투브에다 방송국을 차려버리면 어떨까 싶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람을 타지 않게 말이다.